노자이야기 5장
천지는 어질지 아니하니 만물을 풀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성인은 어질지 아니하니 백성을 풀로 만든 강아지로 여긴다.
천지의 사이는(공간) 마치 풀무와 같구나!
비어 있으면서 고갈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힘차게 나오는 구나.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하게 되니 입을 다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어질지 아니하다(不仁)는 것은 특별히 무엇을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것의 대상으로 비유한 것이 제사나 의식때 쓰는 짚(풀)으로 만든 강아지입니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쓰임이 있으면 만들어 쓰지만 시간이 흘러 다 쓰여지고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일일이 간여하여 임의대로 오래살게 하고 일찍 버리는 일을 하지않고
자연의 섭리에 맞겨둔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성인은 (여기서는 덕이 있는 군주) 백성을 두루 사랑하고
편애하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천지사이에 있어 비어있는 공간이 풀무(대장간에서 불이 잘타도록 공기를 계속 밀어넣는 장치로 속이 비어있고 당기거나 밀거나 바람이 계속 나가도록 되어있음)와 같이
계속 작용을 하여 잠시도 쉼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네요.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진다'는 것은 우리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죠.
무엇인가 안다고 자주 떠들다 보면 금새 밑천이 드러나고,
안다는 것에 집착을 하면 말을 덧붙이고
거기에 자꾸 비유를 들어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게 됩니다.
동양에서는 말을 가능하면 아끼는 이유는
말이 가지는 헛점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말보다는 실천을 중요시 하죠.
공자도 말은 어늘하게 하고 행실은 민첩하게 하라고 논어에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말이 행동을 앞서는 것을 옿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도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말이 행실을 보완해야지
말로 행실을 덮으려는 것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여라, 그것이 아는 것이다. -논어에서.
모르는 것에 대한 자각. 섣부르게 말하는 것이 가져오는 오류는 고치는 것이 좋은 듯 합니다.
물론 이는 자기를 앞세우려는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명언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