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감상실/동서양 고전

노자이야기 1장

가온찍기 2007. 4. 19. 11:35

 

우리가 '도'라고 말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언제나 '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그 개념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그것을  제대로 이름지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이름이 이루어지기 전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이 지어진 후에 온갖 것의 어미가 된다,

그래서 언제나 하고자 함(의도)이 없어 그 신묘(본질?)한 것을 보게 되고

언제나 하고자 함이 있어 그것의 작용(운행, 현상)을 보게된다.

이러한 두 가지는 같은 곳에서 나왔는데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라,

똑같이 이것을 玄(현)이라 말하는데

玄하고( 신비하고) 또 玄하니 모든 妙( 신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로다.

 

이 1장은 노자의 큰 뜻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에 대한 학자들의 주석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1장은 가장 오래된 대나무로 돤 죽간에는 없는 내용이라 

후세에 노자의 종합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1장에는 '도'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유학에서는 正名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率性之謂道 (하늘이 내게 준 성품 그대로 따라서 행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와 같이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통해 이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자의 철학은 이를 뒤집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의 철학이라고도 합니다.

표현하는 것도  -이것은 무엇무엇이다-가 아니라 무엇무엇인 것 같다. 라고 하는 것이 많아

직설적 표현보다는 비유를 통해 (上善若水)설명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현상세계에서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개념을 전달하고 이해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느 일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통용되는 것일 수도 있고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라는 것을 노자는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라는것은  물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표현이기에

말과 사물 또는 본질과 혼동하지 말라고 1장에서 경고를 합니다.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말의 한계를 우선 인식하고 있어야 

다음장으로 나아가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참선하는데 화두를 꺼내듭니다.

그런데 活句가 언어에 표현되는 순간 死句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도가도비상도 명가명 비상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에 있어  무명 ,유명을  무와 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유가에서  태극과 무극 그리고 理로 설명하느데 일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렇게 해석을 한다고 해도 이해하는데 있어 큰 차이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존재론적으로 1장을 보는 것인지 인식론적으로 보고 있는 지에 차이는 있습니다.

덧붙일 것은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되었다'. 라는 개념이

여러분에게 어찌 느껴지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말로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늘 느끼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글은 말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 라는

옛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